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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바보상자에서 스마트TV까지
김헌식 |
가격: 18,000원
쪽수: 288
발행년/월/일: 2013.12.20
크기: 신국판
ISBN: 978-89-337-0673-2 (03070)

머리말

Ⅰ. 텔레비전의 아이러니한 두 얼굴 
1. 사실보다 허구가 더 많은 텔레비전 리얼리티쇼   
2. 총기난사 사건과 텔레비전의 총기폭력 묘사

Ⅱ. 텔레비전의 메시지가 결국 세상을 바꾼다    
3. 동성애, 평등권, 그리고 텔레비전
4. 텔레비전의 힘눈물과 감성에 호소하라

Ⅲ. 텔레비전 업계와 사람들    
5. 미국 방송계의 여성파워
6. 방송의 꽃? 여성 앵커가 제 역할을 하려면   
7.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방송사 인턴십   

Ⅳ. 텔레비전과 정치의 끈질긴 인연   
8. 오늘은 방송인, 내일은 정치인텔레비전 정치 시대   
9. 올림픽과 애국심, 그리고 텔레비전   
10. 공영방송의 이상과 현실 

Ⅴ. 텔레비전과 정치선거    
11. 끊이지 않는 공정성 논란미국 텔레비전 선거보도는 불공정하다 
12. 대권 향방 가르는 미국 대통령선거 텔레비전 토론   

Ⅵ. 위기상황 속에서 더 돋보이는 텔레비전    
13. 재난발생과 지상파 방송의 사명   
14. 전쟁위협과 텔레비전 뉴스   
15. 국익에 좌우되는 텔레비전의 항공기 추락사고 보도   

Ⅶ. 멀티미디어 시대 텔레비전의 위기와 도전 
16. 소셜미디어 시대 텔레비전의 위상변화    
17. ‘아랍의 봄’에서 대비된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Ⅷ. 텔레비전업계의 제로섬 생존전략  
18. 다채널 텔레비전 시대와 적자생존의 법칙    
19. 경제위기와 방송업계의 지각변동   
20. 규제 강화냐 완화냐,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논쟁  

Ⅸ. 텔레비전의 미래를 엿본다    
21. 대형화면과 고화질 경쟁 뜨거운 텔레비전산업의 미래   
22. 위기냐 기회냐내 맘대로 골라보는 DVR시대    
23. 방송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NAB쇼   
24. 텔레비전의 미래세 가지 시나리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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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텔레비전: 바보상자에서 스마트TV까지』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으며 방송 프로그램을 비롯한 콘텐츠가 시청자와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미디어 문화 비평적 관점에서 살펴본 책이다. 특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주제와 쟁점, 예를 들어 리얼리티쇼 열풍, 이미지 정치 및 선거, 동성애 묘사, 총기 폭력, 재난 보도 등이 과연 어떤 문화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를 분석하고, 위성TV, IPTV, 모바일TV, DVR 등 텔레비전과 주변기기 기술의 발전이 시청자의 텔레비전 이용 습관이나 텔레비전 산업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조명한다. 또 글로벌 경제위기와 불안정한 세계 정세, 소셜미디어의 확산 속에서 텔레비전 산업이 어떻게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What is Television?
활자를 위주로 하는 인쇄매체가 기원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방송매체 특히 1930년대에야 첫 전파를 내보낸 텔레비전 방송은 그 역사가 80여 년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텔레비전 방송은 영상과 음향을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어느 매체보다 감성적인 호소가 가능하며 누구라도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 효과도 신속하게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 방송은 그동안 가장 영향력 있고 폭넓은 수용자를 지닌 매체로서, 정보를 전달하고 오락 및 휴식을 제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대중매체로 자리 잡았다. 텔레비전 방송이 대중문화의 생산자이자 전파자라는 말을 듣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등장한 지 80년을 넘어선 텔레비전 방송은 최근 20여 년 동안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의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텔레비전 업계를 주도했지만, 케이블 텔레비전과 위성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텔레비전 방송의 본격적인 ‘다채널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여기에다 지난 10년 동안 디지털 기술과 컴퓨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텔레비전과 통신, 컴퓨터가 융합된 이른바 ‘멀티미디어 컨버전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IPTV와 개인용 모바일 기기 텔레비전 등이 등장했다. 과거에는 거실이나 안방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시청하는 가족 중심 매체이던 텔레비전 방송이, 점차 개인이 필요한 콘텐츠를 골라 언제 어디서든 텔레비전 수상기 외에도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을 활용해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영상매체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송환경 속에서 텔레비전 방송은 일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오락과 휴식, 정보를 전달하던 일방향 매체에서 벗어나 시청자와 상호 소통하는 쌍방향 매체로 바뀌어 가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공룡에 비유되는 몇몇 거대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주도하던 독과점적 산업구조였으나, 이제는 여러 개의 중소 규모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사와 케이블 텔레비전, 위성 텔레비전, IPTV 등 각기 다른 매체 플랫폼을 통해 개별적이면서도 까다로운 취향을 지닌 시청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지극히 기술 집약적이고 경쟁적인 시장산업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텔레비전 방송 환경이 보다 다원화된 구조로 바뀌게 되면서, 한 개의 텔레비전 채널을 매개로 불특정 대다수 시청자를 상대하던 전통적인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이 시청자와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치는 효과와 영향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 봐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이 책은 이처럼 숨 가쁘게 변화하는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과연 텔레비전 방송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살펴본다.

급변하는 세계, 텔레비전을 말한다
이 책은 텔레비전의 탄생에서부터 시대별 기술 변천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기술적 전문용어를 사용해 장황스럽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늘날 텔레비전 매체와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 급변하는 시청자의 취향과 문화적 풍속도가 텔레비전 업계나 프로그램 콘텐츠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는가를 방송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와 현업에 종사하는 방송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풀어 나간다. 다양한 분야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텔레비전 방송의 기술과 산업, 제도 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텔레비전 방송에서 전달하는 다양한 메시지가 사회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비롯하여 공직선거, 남북한 대치 상황, 국익 추구, 동성애와 성소수자, 여성 방송인, 방송 규제 관련 법률 등 아직까지도 민감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나 쟁점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 책은 모두 아홉 개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텔레비전 방송이 사회와 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타나는 사회 문화적 가치의 이중성과 위선, 변화하는 텔레비전 방송 환경 속에서 바뀌어 가는 시청자의 가치관, 그리고 다매체 다채널 경쟁체제 속에서 텔레비전 방송이 여전히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큰 매체로서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가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와 쟁점 가운데에는 미국 텔레비전업계를 중심으로 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저자가 현재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텔레비전 매체와 수용자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텔레비전 업계와 시장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여러 변화는 우리나라 텔레비전 업계와 시청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례로,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된 리얼리티쇼나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으로 그대로 방영되거나 유사한 형식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재구성되어 방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오늘날 텔레비전 방송의 제작, 편성 방식이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방송 콘텐츠 역시 문화와 국경을 초월해 자유롭게 이동하며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텔레비전 방송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우리 텔레비전 방송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지상파든 케이블 방송이든 가릴 것 없이 앞다퉈 리얼리티쇼를 제작하면서 시청률 경쟁에 나서다 보니 다른 유사 프로그램들과 차별성을 줘야 하겠고, 결국 출연자들을 상대로 톡톡 튀는 발언을 유도하고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 더욱더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광고수입도 늘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리얼리티쇼란, 시청자들에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착각이 들도록 ‘허구’를 곁들여 만들어 낸 ‘가상의 현실’을 다룬 프로그램이라고 봐야 한다. 25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미국 텔레비전 방송이 동성애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보다 전향적이고 긍정적으로 묘사해 미국인들의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여 여론의 향방을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텔레비전이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했던 여러 주제, 예를 들어 흑백 인종차별 문제, 반전시위, 드라마 내 섹스 묘사처럼 한때 금기로 여겨지던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바꿔 놓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동성애와 성소수자들에 대한 미국 텔레비전의 전향적 태도와 긍정적 묘사는, 원만한 사회통합과 문화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텔레비전매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효과적인지를 입증하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되고 있다. 50~51쪽

문제는 이처럼 텔레비전 방송 출연자나 기자, 아나운서로 대중적 인기를 누린 인물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경우, 평소 방송에서의 발언이나 취재 보도내용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이들의 정계진출을 가로막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얻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는 인물들이 넘쳐 나는 나라에서는 결코 정상적이고 내실 있는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근시안적이고 대중선동을 기반으로 하는 이미지 정치가 판치게 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았다는 친근함에 이끌려 이들을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등으로 손쉽게 뽑아 주는 유권자들의 얄팍한 정치의식과 투표관행도 반드시 사라져야 할 우리 시대의 악습이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텔레비전 출연자가 내일이면 대중적 정치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텔레비전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여실히 입증한다 하겠다.  102~103쪽

시청자 기부금과 연방정부 보조금으로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급급한 미국의 공영방송 체제를 살펴볼 때,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수신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재원확보 방안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라 상업방송과 경쟁하면서 시청률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자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시청자에게도 더 유익한 길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결국 KBS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의 수입은 시청자들이 납부하는 수신료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방송광고를 통해 충당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공영방송에서 방영하는 방송광고를 없애면 당장은 기업이나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상업성을 배제하고 공영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여론몰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퍼센트 수신료로만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되면, 5~6년에 한 번씩 수신료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부와 국회, 정당 관계자들에게 수신료 인상안을 들고 가 읍소해야 하는 등 정치권의 영향력에 더욱 휘둘리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공영방송도 재원부족과 정치권의 공방에 시달리면서 소수의 시청자와 청취자들만을 상대하는 미국 공영방송 PBS나 NPR처럼 고독한 방송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 125쪽

대선후보들 간의 텔레비전 토론은 1960년 공화당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 간에 사상 처음으로 이뤄졌다. 당시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노련하지만 지치고 병약한 모습의 현직 부통령 닉슨보다 젊고 잘생긴 용모의 상원의원 케네디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케네디가 대선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텔레비전 토론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 대선후보들 간의 텔레비전 토론을 계기로 미국 언론학계에서는 텔레비전매체의 후광효과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풍부한 국정경험이나 정치경력, 원숙함을 내세우는 것보다 온화한 미소와 호감 가는 용모, 그리고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긍정적 관심과 지지를 더 얻게 돼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실질적인 내용보다 겉치레와 이미지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138~139쪽

아시아나항공기 착륙사고를 계기로 우리 텔레비전 방송이 보다 더 노력해야 할 것은, 한국과 미국 또는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이해가 걸린 국제선 항공기사고 보도에 있어서는 방송뉴스가 때때로 불균형적이고 일방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다는 국제뉴스의 특성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사고 관련 보도가 마무리될 때까지 균형과 공정함의 잣대를 상대 국가의 방송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면밀히 적용하는 것이다. 187쪽

미국 네트워크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와 관련하여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며 시위행진이나 체포 등 사실전달 위주의 보도에 치중했는데,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과 불만을 집중 조명하거나 근본적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전통적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이나 신문 보도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주장을 펴거나 시위장면을 담은 글이나 사진을 부지런히 올리고 전파하느라 분주했다.  196~197쪽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시민혁명은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아랍권의 뉴미디어 혁명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위성 방송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시작된 아랍인들의 자각이 2011년 자유를 갈망하는 신세대 계층의 욕구와 맞아 떨어져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교체 도미노를 불러온 것이다. 대다수 국민과 교감하지 못하고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올드미디어 지상파 텔레비전들은 시민혁명으로 권력에서 쫓겨난 독재자들처럼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과 달리 북미와 유럽, 아시아 각국의 지상파 텔레비전들은 아직도 월등히 우수한 콘텐츠와 비교적 충실한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다채널 매체 환경과 눈부신 기술의 진보 속에서 거대방송 또는 대기업이라는 위치에 안주하면서 스스로의 변신을 망설이거나 환경변화에 무감각하게 지내다 보면, 지상파 텔레비전은 어느 날 뉴미디어의 물결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상실한 채 왜소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207쪽

일방통행식 메시지 전달을 중심으로 이어 온 산업화시대의 독과점 방송체제는 이제 작별을 고할 때가 가까워졌다. 방송사와 채널 수의 양적 확대는 기존 독과점체제의 방송구조에 새로운 다양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방송사가 많아지면서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게 되는 방송사들만이 경영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광고 단가와 물량의 재조정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방송환경에서 최적의 콘텐츠와 시청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송사들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텔레비전매체는 기존의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화된 기술을 활용해 날로 진화해 가고 있다. 수많은 미국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거실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용해 케이블 방송이나 지상파 방송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다가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영화 대여업체인 넷플릭스나 훌루에서 최신 개봉 영화를 직접 내려받아 즐기거나 음원업체인 판도라에서 애청곡을 골라 듣기도 한다. 그야말로 텔레비전은 이제 전통적인 기능 외에도 극장, 콘서트홀, 라디오, 그리고 컴퓨터로서의 기능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218쪽

다매체시대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텔레비전매체와 방송업종이 앞서 소개한 다른 미디어업종들처럼 사양길로 접어들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매체환경 변화 속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타 매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타 매체의 장점을 융합해 폭넓은 소비계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 80여 년간 이루어진 텔레비전 매체와 업계의 변화상을 되돌아보면 텔레비전이 환경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면서 기술과 내용 면에서 변신과 진화를 거듭해 온 사례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앞으로도 텔레비전의 미래가 밝다고 믿게 되는 이유다. 253쪽

지금까지는 시청자들이 DVR에 녹화한 프로그램을 보려면 반드시 집에 돌아와 DVR를 작동시켜야 했지만, 앞으로는 케이블 방송사 서버에 설치된 원격 네트워크 DVR 또는 클라우드 DVR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녹화 저장해 두고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이거나 여행 도중이더라도 ‘어디에서든지’ 마음대로 재생해 틀어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시청자들은 기존의 텔레비전 리모컨 외에도 자신의 핸드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방송 프로그램을 녹화 재생할 수 있다. 언제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른바 ‘time shift’ 개념에 뒤이어 앞으로는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른바 ‘place shift’ 개념으로 DVR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시청자의 편의성 또한 획기적으로 증대되는 것이다. 262쪽

텔레비전의 미래에 있어서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지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전설적인 방송인 에드워드 머로가 남긴 한마디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통신혁명의 발전과 최신 컴퓨터의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방송인들은 결국 예전부터 끊임없이 고민해 온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과연 방송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텔레비전의 미래는 기술발전 이외에도 그 속에 담길 방송 내용과 프로그램 콘텐츠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언론학자들 사이에 텔레비전매체의 변신과 진화와 관련해 의견의 일치가 이뤄지는 부분이 있지만, 장기적인 미래 예측에 있어서는 제각기 의견이 다르다. 이런 학계의 고민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언론학자들이 텔레비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의 명칭은 단순명료했다. “What is Television?” 도대체 “텔레비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텔레비전의 미래상을 학자들로서도 쉽사리 내다보기 어렵다는 자기고백인 셈이다. 282~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