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 선정도서

왕징웨이 연구-현대 중국 민족주의의 굴절

왕징웨이 연구-현대 중국 민족주의의 굴절

지은이: 배경한

분야: 역사·철학·종교

발행일: 2012-11-28

ISBN: 978-89-337-0636-7 (93910)

페이지수: 360쪽

판형: 신국판

가격: 30,000원

수상: 201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20세기 전반에 장제스(蔣介石)와 함께 중국 국민당정부를 이끈 왕징웨이(汪精衛)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도 매우 다양하여, 쑨원의 오른팔, 공화혁명의 이론가이자 활동가, 전제군주제 타도를 주장한 급진주의자, 마지막 황제 푸이의 아버지 섭정왕을 암살하려다 투옥된 테러리스트, 신해혁명의 영웅, 크로폿킨의 호조론을 숭앙한 무정부주의자, 국민당 좌파의 지도자로서 장제스와 대립한 정치지도자, 그리고 결국 친일파로 변절한 민족 배반자 등으로 묘사되곤 한다.
『왕징웨이 연구―현대 중국 민족주의의 굴절』은 중국인들의 영웅이었으나 친일파로 변절한 혁명가 왕징웨이에 관한 국내 최초의 본격 연구서이다. 왕징웨이를 ‘민족 배반자’로만 평가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를 재조명하는 한편, 그를 통해 중국 현대 민족주의의 폭넓고 다양한 면모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왕징웨이는 누구인가?―국내 최초의 본격 연구서
왕징웨이(汪精衛)는 20세기 전반의 중화민국사에서 쑨원(孫文)과 장제스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치지도자이다. 당시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일본 유학 도중 쑨원을 만난 후 공화혁명운동에 뛰어들어 혁명가이자 이론가로 활동했다.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조가 무너졌으나 혼란 속에서 위안스카이가 대두하고 각지에서 여러 군벌이 발호했으며 서구 열강과 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 역시 중국 내의 이권을 주장했다. 신해혁명 과정에서 혁명운동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중화민국이 성립한 후 제1차 국공합작 추진을 주도하고 국민당 좌파의 중심이 되어 우한(武漢) 국민정부를 이끌었으며, 장제스가 독재정치를 펴자 반(反)장제스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필생의 라이벌 장제스와는 사사건건 대립했다. 굴곡이 많았던 그의 정치적 일생은 곧 초기 국민당정부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왕징웨이는 여러 차례 정치·사상적으로 변화한 끝에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에 친일파로 전향하여 친일 괴뢰정권을 세우고 스스로 수반이 되었다. 이후 그의 이름은 ‘민족 배반자〔한간(漢奸)〕’의 대명사가 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를 민족 배반자로만 평가하는 단편적 논의에서 한 발짝 떨어진 시각을 제시한다.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왕징웨이의 정치적 일생과 사상의 흐름을 복원하는 한편, 당대에 나타난 여러 민족주의적 사상을 파헤치고 있다. 이를 통해 혁명운동의 영웅이었던 그가 어떻게 결국 친일파로 변화했는지를 다층적 시각에서 논의하고 있다.

격동의 중국사와 중국 민족주의의 이면
왕징웨이에 관하여 논의할 때 가장 민감한 문제는 그가 친일 괴뢰정권의 수반이 되었다는 점과 이를 둘러싼 평가 문제이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왕징웨이의 일생과 사상은 중국 민족주의의 한 흐름을 대변한다. 그는 당대의 민족주의와 사상적 조류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많은 저술과 활동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이끌었다. 이 책은 민족주의자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그의 생애에 접근하여 사상과 정치활동의 구체적 실상을 밝히는 한편, 이러한 변화의 원인과 의미를 파헤쳤다. 또한 당시 중국에서 나타난 민족주의의 다양한 면모에 실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왕징웨이의 친일이 20세기 전반기의 중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그가 겪은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났음을 주장한다.

방대한 자료를 통해 드러난 왕징웨이와 장제스의 갈등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왕징웨이와 장제스의 숙명적인 갈등과 대립이다.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이 탄생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군사적 기반이 없었던 왕징웨이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 군벌과 장제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그는 쑨원이 사망한 이후 급속히 당권을 장악하고 세력을 키운 장제스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둘 사이의 대립에는 국민당 내부의 분파들과 공산당뿐만 아니라 각지의 군벌과 심지어 소련까지도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나 왕징웨이는 장제스와의 충돌에서 언제나 패배했고, 그 결과는 잦은 외유로 나타났다. 그와 장제스의 대립과 협력은 그가 일본의 점령지로 탈출하여 친일파로 변절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장제스는 왕징웨이가 친일로 돌아서자 여러 번 그를 암살하려 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왕징웨이와 장제스가 반목하고 충돌하는 양상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드러냈다.

이 책의 구성
제1편에서는 왕징웨이 민족주의의 출발점이 된 신해혁명 시기의 반만(反滿)민족주의와 1919년 전후의 5·4운동 시기 반제민족주의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만주족의 지배를 타도하고 한족 중심의 공화혁명을 이룩하자고 주장한 그의 민족주의 인식의 한계와 무정부주의적 성향, 반제 인식의 모순이 드러난다.
제2편에서는 현대 중국의 국민국가 성립 단계로 인식되는 국민혁명 시기에 나타난 왕징웨이의 반제 인식과 그 성격, 중산함사건을 통해 나타난 장제스와의 대립을 살펴보았다.
제3편에서는 왕징웨이의 반제민족주의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어떻게 친일이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굴절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왕징웨이와 장제스가 여러 차례 연합체제를 이루어 국민당정부를 이끌었으나 끊임없이 반목하는 과정, 일본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편 왕징웨이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결국 친일로 돌아서게 되는 과정과 그 원인이 드러난다.
제4편에서는 왕징웨이 친일정권이 정권 유지의 핵심인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을 검토했다. 쑨원이 주창한 대아시아주의의 변용, 일본의 대중국 화평전략의 기초가 된 동아연맹론 수용과 활용, 그리고 만주국에서 통치이념 확립을 위해 설립된 친일단체인 신민회와의 관계 등을 논한다. 이를 통하여, 친일로 돌아선 왕징웨이 자신과 그의 친일정권이 겪게 된 민족주의의 왜곡과 정치적 곤경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왕징웨이와 현대 중국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시각

제1편 반만에서 반제로

Ⅰ. 신해혁명 시기의 왕징웨이와 반만민족주의
1. 혁명가 왕징웨이와 민족주의
2. 일본 유학과 동맹회 활동
3. 무정부주의의 영향
(1) 섭정왕 암살 기도와 실패
(2) 국사공제회 조직과 남북의화에서의 역할
4. 반만민족주의 주창과 그 의미
(1) 반만민족주의 제기
(2) 반만민족주의 실천과 한계
5. 반만민족주의의 의미

Ⅱ. 5·4운동 시기 왕징웨이와 반제민족주의―파리평화회의 관련 활동과 반제 인식 형성
1. 반만과 반제
2. 파리행과 평화회의 관련 활동
3. 국제 인식의 변화와 반제민족주의 형성
(1) 평화회의와 국제연맹에 대한 이해
(2) 무정부주의, 호조론의 영향과 반제 인식의 한계
4. 반제 인식의 형성과 그 한계


제2편 반제민족주의의 전개

Ⅰ. 국민혁명 시기 왕징웨이와 장제스의 권력투쟁과 좌파 지도자 왕징웨이의 권력 한계
1. 왕징웨이, 장제스, 반제민족주의
2. 왕징웨이와 장제스의 권력투쟁, 중산함사건
(1) 중산함사건, 그리고 왕징웨이와 장제스의 관계
(2) 장제스의 권력 장악과 왕징웨이의 외유
3. 북벌 개시 이후의 영왕운동 전개와 왕징웨이의 귀국
(1) 영왕운동의 전개
(2) 장제스의 대응
(3) 왕징웨이의 귀국
4. 상하이담판과 장·왕 관계의 결렬
5. 왕징웨이의 권력 한계

Ⅱ. 국민혁명 시기 왕징웨이와 반제민족주의 실천
1. 국민혁명과 반제민족주의
2. 국민당의 개진, 개조와 반제 제기
3. 북상, 국민회의운동과 반제의 고양
4. ‘혁명외교’와 반제 실천의 한계
5. 반제의 좌절


제3편 반제에서 친일로

Ⅰ. 중일전쟁 발발 전야 왕징웨이의 대일 태도―시안사변 전후의 친일 가능성 검토
1. 왕징웨이와 친일문제
2. 1930년대 전반 장·왕 연합체제와 ‘친일파’ 왕징웨이
(1) 반장제스운동과 왕징웨이
(2) 만주사변 이후 복원된 장·왕 연합체제와 왕징웨이의 대일 태도
(3) 왕징웨이 피격사건과 친일파 논란
(4) 장·왕 연합체제 중단과 대일 외교
3. 시안사변 이후의 장·왕 연합체제 복원과 대일 태도의 향방
(1) 시안사변 발발과 왕징웨이의 귀국
(2) 복원된 장·왕 연합체제
(3) 대일 태도의 분기―장제스 국민정부의 ‘선항일’과 왕징웨이의 ‘후항일’
4. 친일의 가능성

Ⅱ. 중일전쟁 발발 이후의 화평운동과 왕징웨이의 친일 선택
1. 왕징웨이 중심의 화평운동을 보는 시각
2. 중일전쟁의 전개와 대일화평론 대두
3. 대일 화평 교섭 진행과 왕징웨이의 입장
4. 중광당회담과 왕징웨이의 충칭 이탈
5. 왕징웨이의 친일 선택과 그 배경
(1) 장·왕 관계와 장제스 배제
(2) ‘혁명외교’의 실패 경험과 국제정세 인식
(3) 분공 경험과 ‘일치방공’에 대한 호응
(4) ‘민족 구원’과 자기희생
6. 왕징웨이의 정치 경험과 친일


제4편 친일의 논리와 친일정권의 곤경

Ⅰ. 왕징웨이 친일정권과 대아시아주의의 변용
1. 왕징웨이 친일정권의 정당성 문제
2. 쑨원의 대아시아주의 ‘계승’
3.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
4. ‘대동아전쟁’ 이후의 대아시아주의
5. 일본 중심의 아시아연대

Ⅱ. 일본 동아연맹운동 수용과 왕징웨이 친일정권
1. 왕징웨이정권과 동아연맹
2. 일본의 동아연맹론과 동아연맹운동
3. 중국의 동아연맹론 수용과 동아연맹운동
(1) 중국의 동아연맹 단체 성립과 활동
(2) 동아연맹중국총회 성립
4. 동아연맹론과 왕징웨이 친일정권
(1) 동아연맹론과 대아시아주의의 결합
(2) ‘정치 독립’ 모색과 좌절
5. 동아연맹론의 결말

Ⅲ. 왕징웨이 친일정권과 신민회
1. 친일정권의 곤경
2. 신중앙정부 수립 구상과 ‘정치 독립’
3. 신민회 조직과 구성
4. 신민회와 동아연맹의 갈등
5. 실패한 ‘정치 독립’

나오는 말―왕징웨이와 현대 중국 민족주의의 굴절
1. 이 책의 내용 요약
2. 현대 중국 민족주의의 굴절과 의미


참고문헌
中文目錄及提要
각 장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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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경북 김천 출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중국현대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난징(南京)대학 역사연구소 연구교수(1995~1996),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방문연구원(2006~2007), 중국 저장(浙江)대학 장제스연구소 객좌교수(2010~2012), 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2001~2002) 등을 지냈다. 1982년부터 신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중국국민혁명의 분석적 연구』(공저, 지식산업사, 1985), 『장개석연구: 국민혁명 시기 군사적·정치적 대두 과정』(일조각, 1995), 『從韓國看的中華民國史』(北京: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4), 『20세기 초 상해인의 생활과 근대성』(편저, 지식산업사, 2006), 『쑨원과 한국』(한울, 2007) 외에 국내외 공저 13권이 있으며, 논문 8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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